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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다!”​종군기자 신즈 피트가 헬리콥터를 타고 모스크바에서 바이코누르로 급히 달려왔을 때, 지온군 제2여단의 저지 부대는 이미 바이코누르 수비군에게 다시 한번 전멸당한 후였다.​피트의 헬리콥터가 전장 외곽에 착륙했을 때, 네 명의 연방군 병사가 그을음과 화염에 그슬리고 총탄 구멍까지 여러 개 뚫린 성월기를 짊어지고 쓰러진 구프 위를 힘겹게 기어오르고 있었다.​이 구프는 짐 세 대의 협공을 받아 빔 사벨에 여러 차례 찔렸고, 심지어 머리 위의 뿔 모양 안테나까지 꽈배기처럼 뒤틀려 있었다.​집단 구타를 당해 쓰러진 구프는 폭파되어 반쪽만 남은 HLV 잔해 위로 쓰러졌고, 그 잔해에 기댄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그리고 그것은 연방군 보병에게 등반로를 제공했다.​수천 명의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군기를 든 네 명의 연방군 병사는 ‘구프 산’을 힘겹게 등반했다. 아침 8시 4분에 ‘산기슭’에서 출발하여, 8시 8분에 성공적으로 정상에 올랐다.​그리고 그들은 힘을 합쳐 군기를 세웠다. 깃대는 구프의 머리 감시 카메라에 꽂혔다. 그곳은 실탄에 맞아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어 깃대 절반을 꽂기에 안성맞춤이었다.​피트는 즉시 카메라를 들어 그 장면을 찍었다. 바로 그 순간, 햇빛이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 위로 쏟아져 내렸다. 깃발의 뒤편으로는 대지 위에 우뚝 선 세 대의 짐이 있었고, 네 명의 연방군 병사는 깃대를 바로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잔해 아래에서는 수많은 연방군 병사들이 군기를 향해 경례를 올리고 있었다.​“굉장해! 내가 찍고 싶었던 게 바로 이거야! 이보다 더 멋진 사진은 없을 거야!”​피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이후로도 그는 여러 장의 명장면을 사진에 담았고, 훗날 이는 《1년 전쟁 옛 사진집》에 수록되었다. 그가 찍은 ‘승리의 서광’이라 불리는 깃발 게양 사진은 그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주었다.​다만 그를 아쉽게 한 것은, 이번에 연방군의 비밀 무기를 찍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은 이미 건담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유출된 사진은 거의 없었다. 피트 역시 건담이 바이코누르에 배치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하지만 다행히 현장에는 촬영할 만한 다른 것들이 많았다. 짐이라 불리는 기동전사들도 마찬가지로 위풍당당했고, 제11기갑연대가 전장을 지나 기지로 복귀할 때 피트는 지휘 전차에 쓰인 ‘시드니의 복수를’이라는 문구를 보고 거대한 클로즈업 사진을 찍기도 했다.​하지만 피트는 몰랐다. 그가 깃발 게양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사실 마카리우스도 현장에 있었다는 것을. 다만 그는 그때 노획한 서류 중에서 구프의 조작 매뉴얼이 있는지 찾고 있었다.​연방군의 맹렬한 포격 때문에 지온 강하 부대의 강하 지점은 원거리 타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고, 아수라장이 된 강하 지점을 뒤져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연방군의 공격 속도가 너무 빨랐다. 어쨌든 연방군이 강하 구역을 점령했을 때, 폐허 속에서 별다른 손상 없이 멀쩡한 물건들을 꽤 많이 발견했던 것이다.흙먼지를 뒤집어쓴 구프 여러 대와 아직 조립도 되지 않은 차량들, 심지어는 꽤 호화로워 보이는 내연기관 세단까지 있었다. 포로를 심문한 후에야 모두가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차는 놀랍게도 제2여단장의 개인 애마였다. 하지만 이제 이 물건은 마카리우스의 것이 되었다.​하지만 그는 차를 몇 번 힐끗 보더니 기지로 다시 돌려보내 자부로에 전시품으로 보낼 준비를 시켰다. 정작 본인은 폐허 속 구프에 올라타 이놈의 성능을 시험해 볼 참이었다.​“아쉽지만, 날지는 못하는군!”​구프의 조작 매뉴얼을 손에 넣은 그는 바닥이 더러운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저앉아 손에 든 문서를 빠르게 훑어보기 시작했다.​그의 부관이자 윙맨인 나가세 케이는 진지하게 매뉴얼을 읽는 마카리우스를 보고서야 그가 마치 학교에 다니는 학생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저 매뉴얼을 정말 한 번만 봐도 된다는 건가요?”​마카리우스가 진지하게 책을 보는 모습을 지켜보던 나가세 케이는 옆에 있던 붉은용대 대원들에게 조용히 물었다.​“네! 두고 보십시오!”​2기 생도였던 나가세 케이는 마카리우스의 전설을 듣기만 했을 뿐 직접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마침내 목격하게 된 것이다!​마카리우스는 금세 매뉴얼을 다 읽고는 발밑으로 휙 던져버렸다.​“자, 얘들아, 기적을 목격할 시간이다!”​그 말이 끝나자, 구프는 정말로 마카리우스의 조종에 따라 다시 일어섰다.​마치 시계 공방을 방불케 하는 자쿠의 콕핏과 비교하면 구프의 내부는 훨씬 깔끔했다. 계기판 대부분이 통합되어 있어 파일럿의 정신을 쏙 빼놓는 어지러운 계기판들이 필요 없었고, 콕핏의 쾌적함도 개선되었다.​물론 이런 소프트웨어적인 개선 효과는 크지 않았다. 그 해괴한 왼손 핑거 발칸과 120mm 자쿠 머신건을 버리지 않는 이상, 구프는 환골탈태한 신형 기체라고 할 수 없었다. 그저 자쿠의 강화 개량형에 불과했다.​“참, 이 기체들 전부 자부로로 보내야 합니까?”​“아마도요. 군기국 높으신 분들이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전부 보내는 건 좀 심한 것 같은데!”​마카리우스는 기체를 조종해 전장을 몇 바퀴 돌고 나서 말했다.​“절반, 아니 그 이상을 남겨야 해!”​“이걸 남겨서 뭐 하시게요? 기체가 없는 것도 아닌데……. 잠깐, 설마 위장 작전이라도 하시려는 겁니까?”​안드레는 콕핏에 앉아 있는 마카리우스를 보며 문득 깨달았다.​이른바 위장 작전이란 은밀한 공작의 일종으로, 다른 조직의 깃발이나 제복 등을 사용해 대중을 오도하여 해당 작전이 다른 조직에 의해 수행된 것처럼 믿게 만드는 행동을 가리킨다.​간단히 말해, 특수전이었다!​마치 특수부대가 적의 군복을 입고 적진에 잠입해 암살, 폭파, 파괴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같았다.​노획한 순정 지온 기동전사들은 상태가 매우 좋았고, 심지어 내부 통신 암호코드도 지워지지 않은 상태였다. 콕핏을 닫으면 기체를 조종하는 파일럿의 신원을 아무도 구별할 수 없을 터였다.​“지금 바로 오이겐 대령님께 연락하겠습니다!”​곧 후방에서 지휘하던 오이겐 대령과의 통신이 무전을 통해 마카리우스에게 연결되었다.​“상부에 보고했네. 자부로에서 알아서 남기고 나머지만 돌려보내면 된다고 하더군!”​“저희더러 알아서 남기라고요?”​마카리우스는 통신기기를 든 채 뒤에 있는 구프를 돌아보더니 이내 환한 미소를 지었다.​한편, 지휘소에 있던 오이겐 대령은 미심쩍은 듯 물었다.​“자부로에 멀쩡한 놈으로 몇 대 보내주긴 할 거지?”​마카리우스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대답이 없었다.​“보내줄 거지? 응?”​그 후, 자부로 기지는 셀 수 없이 많은 자쿠와 구프의 잔해를 받았다. 대부분 팔다리가 없거나 콕핏에 구멍이 뚫린 것들이었다. 물론 잔해 몇 개를 뜯어내면 다른 잔해를 수리할 수 있었지만, 어차피 그럴 수 있다면 멀쩡한 기동전사가 왜 필요하겠는가?​군기국은 즉시 고프를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다. 고프는 울지도 웃지도 못할 심정으로 다시 명령을 내렸고, 그제야 미데아는 멀쩡한 구프 3기와 자쿠 II F형 6기를 돌려보냈다. 그리고 남은 기체들은 마카리우스가 새로 창설한 위장 중대의 자산이 되었다.​이 중대는 작전용 구프 3기, 부품용 구프 2기, 그리고 자쿠 II F형 6기와 예비 부품용 자쿠 6기로 구성되었다.​나머지 몇 기는 마카리우스가 오이겐에게 넘겨주었다.​노획한 무기를 이용해 아직 기동전사를 배치받지 못한 보병 부대를 어떻게든 강화해 보려는 생각이었다.​이 자쿠들은 연방군 도색으로 다시 칠해진 후 기지 수비대에게 인계될 예정이었다.​물론 이것은 임시방편이었다. 예비 부품이 소모되거나 수비대에 여분의 짐이 보충되면 이 자쿠들도 작전 서열에서 제외될 것이었다.​물론 폐기될 리는 없었다. 공병들이 인계받기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전투에 쓰지 않더라도 토목 작업에 동원하면 아주 끝내주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한편 자부로에 도착한 구프는 곧바로 군기국 기술 인원들의 손에 넘겨져 각종 테스트를 받았다.​이후 완전히 분해된 구프 앞에 선 군기국 기술 인원은 아주 확신에 찬 목소리로 자신들의 보고서를 제출했다.​지온군의 현재 구프는 여전히 짐의 성능을 뛰어넘지 못하지만, 적의 기술력을 고려할 때 머지않아 구프를 개량하고 업그레이드할 것이며, 그때가 되면 성능만으로는 짐이 추월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신형 기동전사!” 고프는 보고서를 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현재 미친 듯이 군을 확장하는 연방군이 매일 사병들 입에 들어가는 식량만 해도 천문학적인 숫자였고, 게다가 신형 기동전사까지 개발해야 했다. 이젠 돈을 물 쓰듯 한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지경이었다. 아마 히말라야급 항공모함 갑판에 지폐 인쇄기를 가득 깔아놓고 바다에다 돈을 찍어내는 속도라고 해야 할 것이다.​하지만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고프는 이런 부분에 돈을 아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신형 건담 제조는 기존의 축적된 경험이 있다 해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전까지 연방군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생산량 증설이 거의 완료된 짐뿐이었다.​다행히도 짐은 설계 초기부터 후속 업그레이드를 위한 여유 공간을 고려했다. 사실 많은 기체 업그레이드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기체 내부에 장착된 핵융합로였다.​출력이 강한 핵융합로일수록 더 강력한 무기를 구동하고 더 막강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설계 당시 마카리우스는 템 레이에게 핵융합로 설치 공간을 크게 만들라고 조언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 업그레이드할 때 더 큰 동력로를 탑재할 수 있고, 기존 기체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어 막대한 자금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현재, 이러한 설계는 짐의 개량에 아주 큰 편의를 제공했다.​자부로 기지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것은 중·원거리 화력 지원용인 RGC-80 짐 캐논이었다. RX-77-2 건캐논 역시 제작비가 너무 비싸다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어깨의 메가 입자포는 지구 환경에서는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문제도 있었다. 따라서 염가형 화력 지원 기체는 당연히 필요했다.​이렇게 되면 짐과 함께 중·근거리 조합을 이룰 수 있었다. 또한 짐의 기체를 기반으로 사용하면 높은 부품 호환성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규격이 같아 짐의 수리 부품을 짐 캐논 정비에도 사용할 수 있었고, 덕분에 전장에서 군수는 한 종류의 부품만 공급하면 되었다.​그리고 자부로 기지에서 테스트 중인 두 번째 기체는 화기 관제 장치와 탐색 장치를 강화하고, 방어력과 출력까지 향상시킨 저격형 짐, 즉 RGM-79SP였다.​이전에 마카리우스가 개발을 요청했던 Franz EF-KAR98K 75mm 실탄 소총이 뜻밖에도 많은 짐 파일럿에게 호평을 받았다. 실탄 무기임에도 불구하고 튼튼하고 신뢰성이 높으며 위력도 충분했다.​게다가 새로운 빔 스나이퍼 라이플도 테스트 단계에 들어갔으니, 원거리 저격과 화력에 특화된 기동전사 또한 필수적이었다. 게다가 짐 스나이퍼는 일반 짐에 비해 특정 부분만 개량한 것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업그레이드된 기체였다. 새로운 동력로로 교체하여 추가 장갑 방호력을 확보하고, 더 높은 출력의 탐지·수색 장비도 운용할 수 있었다.​연방군의 전쟁 준비 또한 헛된 것이 아니었다. 30배에 달하는 국력 차이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다만 이제 막 연방의 전쟁 기계가 그 차이를 실질적인 우위로 전환하기 시작했을 뿐이다.​이 명백한 이치를 고프뿐만 아니라, 도즐 또한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이 순간, 그의 제1연합함대는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바이코누르 기지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후, 도즐의 유럽 방면군은 사해 근처에 새로운 집결 및 강하 지점을 설정했다.​성가신 화력 방해가 사라지자 제1연합함대의 병력 투입 효율은 크게 향상되었다. 지온군은 장비의 수명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듯, 사람은 쉬어도 장비는 쉬게 하지 않고 각종 장비를 이용해 병력을 쏟아부었다.​도즐은 연방군이 중앙아시아에 부대를 집결시켜 자신의 유럽 방면군을 포위 섬멸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승리 확률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그는 최단 시간 내에 유럽 방면군 전체를 지상에 배치해야만 했다.​연방군의 온갖 기습을 막기 위해 도즐은 여러 준비를 했다. 2차 강하 부대가 1차 강하 부대의 잔존 병력과 합류한 후, 도즐은 지상으로의 기동전사 수송을 중단하고 대신 지온군이 지구 환경에서의 전투를 위해 개발한 돕 전투기를 투입했다.​현재 지상에 배치된 300기에 가까운 기동전사만으로도 소규모 연방군의 기습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거의 2개 여단에 달하는 병사와 장갑차, 포병 화력 등을 더하면 지상전을 치르기에는 충분했다.​사실 제1여단이 섬멸당한 주된 이유는 전술 운용의 문제였다. 만약 제1여단이 제대로 진형을 갖추고 보급이 충분했다면, 바이코누르의 연방군이라도 그들을 쉽게 격파하지 못했을 것이다.​그래서 후속 부대는 강하 후 자연스럽게 최대한 강하 구역을 넓히고 방어선을 전진시켰다. 이것이 바로 바이코누르의 연방군이 더 이상 공격해오지 않는 이유이기도 했다. 지온군이 이미 공격 범위 밖에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만약 중앙아시아의 다른 지역이나 유럽 지역의 증원군이 도착하지 않는다면, 바이코누르의 연방군만으로는 그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현재 지온군에게 유효한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은 궤도를 노리고 포격하는 궤도 방어 기지와 인근 지역에서 날아오는 연방군 공군 부대뿐이었다.​지구에서 지온인을 '환영'하는 것은 소드피시뿐만이 아니었다. 플라이 만타, 플라이 애로우 등 일련의 전투기들도 있었다. 이 대기권 내 전투기들은 상당한 탑재량과 속도를 자랑하며 지온군의 이착륙 작업에 막대한 지장을 주었다.​이것이 바로 도즐이 돕 전투기를 지상으로 내려보낸 이유였다.​이 전투기 역시 지온 설계자들의 또 다른 추상적인 역작이라 할 수 있었다. 지온 설계자들은 실제로 대기권을 본 적이 없었기에, 지구 환경에 맞는 공기역학적 전투기를 만들어낼 수 없었다. 그들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공기역학 따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오로지 무식한 출력으로만 나는 전투기를 만들어냈다. 도프(도프)는 강력한 추진력의 원자 분사 엔진과 수많은 자세 제어 버니어를 통해... 하지만 이런 설계 덕분에 미노프스키 입자 교란 환경에서 매우 뛰어난 격투 능력을 갖게 되었다. 미립자의 교란 특성 때문에 연방군 전투기의 장거리 공대공 미사일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되어 원거리에서 발사해 명중시킬 확률은 복권 당첨에 버금갈 정도였다. 그리하여 공중전은 다시 과거의 근접전 양상으로 되돌아갔다.​  지상에 도착하여 화물 하역을 마친 돕 전투기들은 즉시 이륙하여 연방군 전투기와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전투기들이 계속해서 격추되었고, 양측 조종사들은 푸른 창공에 피를 뿌렸다.​  이 참혹한 공중전은 지온군에게 귀중한 시간을 벌어주었다. 점점 더 많은 도프가 지상에 도착하자 연방군의 공중 공세도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고, 정찰마저 중단되었다.​  그제야 도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수송을 계속해라. 반드시 이틀 안에 모든 강하 계획을 완료하도록!”​  연방군은 중앙아시아 지역에 주둔 병력이 많지 않았다. 대규모 우주 이민으로 인해 원래도 인구 밀도가 낮았던 이 지역들은 더욱 황량해졌고, 많은 군대를 주둔시키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래서 현재 더 많은 부대가 오데사 기지, 시베리아 기지, 심지어 유럽 방면에서 집결하고 있었다.​  사실 지온군의 작전 계획은 매우 치밀했지만, 실행 과정에서 차질이 생긴 것이 문제였다. 만약 바이코누르를 점령하는 데 실패하지만 않았더라면, 지금쯤 유럽 방면군 전체가 이미 배치를 마쳤을 것이다!​  “바이코누르는… 역시 쳐야겠군!”​  궤도 위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각종 수송 장비들을 보며 도즐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상 강하 작전이란 이런 것이었다. 지상과 우주를 연결하는 발사 기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인원 수송이든 자원 회수든 큰 제약을 받게 된다.​  결국 그는 공국 통수부, 즉 기렌에게 보고서를 올려 아프리카 방면군도 자신에게 넘겨 유럽 지역 작전에 투입해 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다음 단계인 북미 공세도 정체될 것입니다!”​  “그에게 주도록 하게!”​  데긴은 구체적인 군사 배치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이 순간 도즐의 임무가 얼마나 막중한지는 알고 있었다. 게다가 아프리카 방면군의 임무는 그리 긴급하지 않았다. 유럽을 손에 넣으면 아프리카도 멀지 않을 것이 아닌가?​  (이번 화 끝)​제108장 접촉전​  제108장 접촉전​  “커틀러스 1, 3시 방향 주의!”​  “여기는 커틀러스 4, 놈을 물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커틀러스 7, 뒤에 적기다! 피해!”​  “젠장, 피격당했다!”​  “빨리 탈출해!”​  아군 파일럿의 조종석이 손상된 기체에서 튕겨 나가 하늘에 하얀 낙하산 꽃을 피우자, 지상에서 관전하던 연방군 병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지온이 강하를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연이은 손실로 잿더미가 되었던 지온 육상 제1사단은 충분한 병력과 장비, 자원을 보충받자마자 즉시 반격에 나서 바이코누르에 대한 공격을 재개했다.​  이튿날 아침부터 지온군은 십여 차례에 걸쳐 돕 전투기 편대를 출격시켜 전장의 제공권을 장악하려 했다.​  이에 맞서 연방군도 대규모 소드피시 전투기를 이륙시켰다. 양측은 바이코누르 상공에서 격렬한 교전을 벌였다. 수백 대의 전투기가 백 킬로미터가 넘는 공역에서 뒤엉켰고, 미사일이 남긴 하얀 꼬리 연기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지온군 지상 부대도 공중 엄호 아래 바이코누르 기지 외곽 방어선까지 진격했다.​  지온군은 성급하게 공격하지 않고, 포격을 이용해 연방군 외곽 방어 진지를 포격하며 지뢰 지대와 기타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부대들은 참호나 능선 뒤에 웅크린 채, 조용히 하늘 위에서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환호만 하지 말고, 구하러 가!”​  “이미 갔어, 걱정 마!”​  외곽 진지에 있던 연방군 병사들의 시선 속에서, 20mm 개틀링 기관포를 장착한 호버트럭 한 대가 고삐 풀린 야생마처럼 방어선을 박차고 나갔다.​  타이어의 속박에서 벗어난 호버트럭은 불꽃을 튀기며 질주했다. 파일럿은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 조종사가 착륙하는 지점으로 곧장 돌진했다.​  그 순간, 하늘에 떠 있던 연방군 조종사는 아직 땅에 닿지도 않은 상태였다.​  “고맙다, 형제들!”​  탈출 포드가 흔들거리며 땅에 착륙하자, 조종사는 옆에서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호버트럭을 발견했다.​  “천만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조종사를 태운 호버트럭은 기지 방향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도중, 그들은 연방군 것과는 다른 모양의 낙하산 몇 개가 하늘에 떠 있는 것을 보았다.​  “저건 지온 놈들이겠지?”​  “맞아, 저 군복은 한눈에 알아보겠어!”​  짐칸에 앉아 육군 형제들이 나눠준 시원한 음료를 즐기던 조종사가 소리쳤다.​  “그럼 우리는?”​  “차 돌려, 차 돌려!”​  호버트럭의 차장이 파일럿의 머리를 툭 쳤다.​  “돌아가서 포로를 잡는 거야!”​  “저놈들은 조종사라고, 몸값이 비싸. 안토노프 그 영감탱이가 우리한테 훈장을 줄 거야!”​  그 순간, 훈장에 대한 갈망이 파일럿의 마음속에서 솟구쳤다. 위험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능숙하게 차를 돌려 멀리서 낙하하고 있는 지온 조종사를 향해 돌진했다.​  하늘에 매달려 있던 지온 조종사 한 명은 낙하산 탈출 시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다.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아군인 줄 알고, 착륙하자마자 낙하산을 풀고 차를 향해 달려갔다.​  심지어 그는 달려가면서 손까지 흔들었다. 호버트럭에 새겨진 연방군 마크를 보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제야 녀석은 뒤돌아 도망치려 했지만, 호버트럭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곁에서 돕던 파일럿이 먼 곳을 가리키며 외쳤다. 그러자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능선 너머로, 자쿠 II f 세 대가 성큼성큼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가자, 가자! 전속력으로!” 차장도 출혈점을 찾을 겨를 없이, 지온 부상병의 몸에 그대로 찔러 넣고는 조종석으로 돌아가 기관포의 방향을 돌렸다.​한편 파일럿은 자쿠가 나타난 그 순간, 이미 엔진을 가동했다. 차가 막 튀어나가려는 순간, 자쿠(자쿠)의 포탄이 떨어졌다...저 멀리 있던 자쿠 소대 역시 아군 파일럿을 수색하러 나온 길이었다. 그들은 저 장갑차와 같은 소대로, 포성을 듣고 상황을 확인하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장갑차는 연방군에게 기습당했고, 구출하려던 파일럿마저 빼앗기고 만 것이었다.​  분노에 찬 자쿠 파일럿은 즉시 기관총을 한 차례 갈겼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후회했다.​  “미쳤어? 위에 우리 편이 있잖아!”​  그의 동료가 무기를 등 뒤로 집어넣고 히트 호크를 꺼내 들었다.​  “장갑차 한 대쯤이야. 쫓아가면 돼, 멀리 못 가!”​  다음 순간, 자쿠는 온몸의 추진기를 가동하며 도약했다. 단숨에 수백 미터를 뛰어넘어 지상에 착지했다.​  “아니, 형씨들. 저게 저렇게 빨랐나?”​  전차장은 자쿠 세 대가 단 한 번의 도약으로 거리를 크게 좁히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빨리 지원 요청해! 옆 106연대 기동전사들 오라고 해!”​  전차장이 소리쳤다.​  “이미 연락했습니다!”​  이 구역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기지에서는 수십 대의 호버 트럭을 출동시켜 사방으로 흩어진 파일럿들을 구조하고 있었고, 당연히 여러 짐 소대가 외곽에서 대기하며 위급한 아군을 지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5분만 버티랍니다!”​  “저 사이클롭스 놈들은 2분이면 우릴 따라잡겠다고!”​  전차장은 기관포를 짧게 끊어 쏘며 소리쳤다.​  “그럼 난 2분 30초에 건다!”​  파일럿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오직 차량 운전에만 모든 정신을 쏟았다. 계기판의 바늘은 최고 속도에 고정되었고, 연료 게이지는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이 순간, 호버 트럭은 마치 중력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는 듯한 기세였다.​  하지만 뒤쫓는 자쿠들은 여전히 깡충깡충 뛰며 접근해왔다. 양측의 거리는 이미 상당히 좁혀져, 이제는 전차장의 눈에도 기관포탄이 적의 장갑에 부딪혀 튀는 불꽃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  20mm 기관포로 십수 미터 높이의 거구를 상대하기란 당연히 무리였다. 더군다나 고속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는 74식의 20mm 포에 양방향 안정 장치가 있더라도, 고속 기동 중에는 안정기가 제 기능을 못 했다. 따라서 전차장의 공격은 자쿠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자쿠 파일럿에게 약간의 쾌감마저 안겨주었다!​  “고작 이 정도 실력이냐? 어디 한번, 날 죽여보시지!”​  말과 함께, 파일럿은 다시 한번 도약했다. 이번에는 74식의 바로 근처까지 뛰어올라, 마치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기만 하면 도망치는 74식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맙소사, 여기서 살아서 돌아가면 다시는 이 거지 같은 기갑 부대에 안 있을 거야. 나도 기동전사나 몰 거라고!”​  “조심해, 저놈 뛴다!”​  전차장의 고함이 파일럿의 혼잣말을 끊었다.​  이윽고 흙먼지가 휘날리며 거대한 그림자가 트럭 위를 날아 앞쪽에 착지했다.​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서 강철로 된 거대한 손이 불쑥 튀어나왔다.​  “어림없지!”​  파일럿이 맹렬하게 방향을 틀자 호버 트럭은 기가 막히게 멋진 Z자 드리프트를 선보이며 거대한 손을 피하고 자쿠의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갔다.​  전차장도 잊지 않고 기관포로 몇 발 더 긁어주어 자쿠의 가랑이 장갑에 불꽃이 튀게 만들었다.​  트럭을 놓친 자쿠는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하지만 아군이 다칠 것을 우려했는지 히트 기능은 켜지 않았고, 도끼날 역시 트럭이 아닌 트럭 앞쪽을 노렸다.​  하지만 방금 전의 드리프트로 자신감이 붙은 파일럿은 도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차체를 움직여 피했다.​  “바보 같은 놈, 이 할애비는 입대 전에 나폴리에서 피자 배달하던 몸이라고!”​  파일럿은 그렇게 말하며 왼손을 뻗어 자쿠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런 개자식이!”​  자쿠 파일럿은 감시 카메라를 통해 상대의 가운뎃손가락을 똑똑히 보았다. 불같이 화가 난 그는 저 트럭의 파일럿을 잡으면 몸의 뼈란 뼈는 모조리 으스러뜨리겠다고 맹세했다.​  “상관님, 저희가 너무 연방군 통제 구역 쪽으로 깊이 들어온 것 같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며 추격대열 가장 뒤에 처져 있던 세 번째 자쿠의 파일럿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닥쳐, 신참! 무서우면 너 혼자 돌아가!”​  “하지만, 상관님…”​  “무서우면 혼자 돌아가라고 했다!”​  자쿠 편대장 기체 안에서 소대 지휘관이 나지막이 욕설을 내뱉었다.​  이번에 보충된 신참들은 정말이지 쓸모가 없었다!​  대장에게 호되게 꾸중을 들은 신참 파일럿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동료의 뒤를 바짝 쫓을 수밖에 없었다. 혼자 돌아갈 배짱은 없었다. 만약 동료들이 무사히 돌아간다면야 변명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만약 동료들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는 군사 재판에 회부될 것이고, 온 가족에게까지 불똥이 튈 터였다.​  그때, 두 번째 자쿠의 파일럿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대장님, 정면에 연방군 기동전사가 접근 중입니다!”​  “보고 있다!”​  자쿠 편대장이 감시 카메라 렌즈를 돌리자, 약 3킬로미터 밖에서 짐 세 대가 무기와 방패를 들고 그들을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기동전사 전투 준비. 저놈들에게 우리가 제1여단 놈들 같은 폐물이 아니란 걸 똑똑히 보여주자고!”​  곧이어 자쿠 소대는 등 뒤의 120mm 머신건을 꺼내 들고 짐을 향해 사격하며 돌격을 개시했다.​  “저놈들, 근접전을 걸어올 생각이야. 모두 조심해! 일단 원거리에서 왼쪽에 있는 놈부터 집중 공격한다!”​  이 짐 소대는 기갑 사단에 배속된 일반 소대로, 붉은용대 같은 에이스 부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파일럿들은 자부로에서 착실하게 기술을 배운 터라 소대 지휘관은 매우 침착하게 지시를 내렸다.​  왼쪽에 있던 자쿠는 당연히 신병이 탄 기체였다. 두 선임에 비해 그의 자쿠는 움직임이 상당히 뻣뻣했고 반응마저 반 박자 느렸다. 연방군이 그를 만만한 상대로 찍은 것은 당연했다.​  “발사!”​  “으악, 대장님, 살려주세요!”​  신참 파일럿은 비명을 질렀다. 그의 기체는 짐 세 대의 집중 포화를 맞고 반응할 시간도 없이 그대로 격파당했다.​  “발목이나 잡는 폐물 같으니!”​  남은 두 대의 자쿠는 쓰러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돌진했다. 연방군의 짐들은 방금 탄창을 비워 재장전 중이었으므로, 우위는 그들에게 있었다!​  불과 백여 미터의 거리. 두 대의 자쿠 I이 뛰어올라 짐의 근처에 착지했다.​  이어서 히트 호크가 번개처럼 내리쳤지만, 짐의 반응도 빨랐다. 짐은 무기를 버리고 빔 사벨을 뽑아 도끼의 공격을 막아냈다.​  “대장님, 빨리 좀요!”​  2번기 자쿠는 두 대를 상대로 버겁게 싸우고 있었고, 자쿠 편대장은 짐 지휘관을 노려 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짐 대장은 몇 차례 공격을 막아내며 자쿠의 공격이 너무 날카로워 막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는 문득 시스템에서 봤던 그 기술을 떠올렸다.​  그는 백 점프로 자쿠의 공격을 뿌리친 뒤, 방패를 집어 자쿠에게 던졌다. 동시에 오른손으로는 군도를 버리고 허리춤의 빔 스프레이 건을 뽑았다.​  자쿠 대장이 도끼로 방패를 가르는 순간, 짐 대장의 빔 스프레이 건도 정확히 조준을 마쳤다.​  “젠장!”​  그것이 자쿠 대장이 분통을 터뜨리며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이번 화 끝)​***​### 제109장 바이코누르 혈전 (상)​  “대장님?”​  짐의 기습은 지온 파일럿에게 그야말로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근거리에서 빔 스프레이 건의 명중률은 빔 라이플보다도 훨씬 좋았다.​  자쿠 대장의 기체는 그대로 관통당했고, 공격 위치는 바로 조종석이었다.​  이윽고 도끼를 든 기체가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이제 남은 자쿠는 다른 두 대의 짐에게 포위된 단 한 대뿐이었다.​  “이런 젠장, 네놈들과 끝까지 싸우겠다!”​  두 동료의 죽음에 절망에 빠진 자쿠 파일럿은 히트 호크를 들고 거침없는 기세로 두 대의 짐을 몰아붙이며 계속해서 후퇴시켰다.​  “뭐 하는 거야?”​  짐 대장은 두 동료가 자쿠 한 대에 밀리는 것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짐 파일럿들의 전투 경험이 부족하긴 해도, 지금은 둘이서 하나를 상대하는 상황이었다.​  “총을 쏴!”​  “2호기랑 엉켜 있어서 쏘기 힘듭니다!”​  “슈웅!”​  짐 대장은 즉시 스프레이 건을 들어 기회를 노렸고, 자쿠의 머리 감시 장치를 터뜨렸다.​  주요 카메라를 잃은 자쿠의 공격 리듬은 즉시 흐트러졌다. 이것이 바로 그와 싸우던 짐에게 절호의 공격 기회를 주었다.​  그는 방패로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도끼를 쳐낸 뒤, 칼로 자쿠의 팔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세 번째 짐이 재빨리 다가가 자쿠의 등을 발로 밟아 땅에 넘어뜨렸다.​  “지온 파일럿, 즉시 항복하라!”​  외부 스피커를 켠 짐 대장은 자신이 버렸던 빔 사벨을 다시 주워 전원을 켰다. 그리고 뜨거운 입자 빔을 조종석 쪽으로 조금씩 움직였다.​  곧이어 피투성이가 된 지온 파일럿이 비참한 모습으로 기어 나왔다. 할 수만 있다면 고통 없이 적의 총에 맞아 죽고 싶었지, 빔 사벨에 조금씩 숯덩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 파일럿 역시 겉옷이 벗겨진 채 트럭 짐칸에 묶였다.​  “내가 잡은 이놈, 당신들 둘 몫은 하지 않겠소?”​  짐 대장이 트럭 전차장에게 말했다.​  “이건 한 명으로밖에 안 쳐주지!”​  전차장은 경멸 어린 표정을 지었다.​  “기동전사는 육해공 우주군 어디서나 몰지만, 그놈들이 전투기 모는 거 본 적 있소?”​  연방군과 지온군의 공중전은 양측의 계속된 증원으로 막상막하의 결과를 낳았지만, 파일럿 구조 작전에서는 연방군이 대승을 거두었다.​  기지에서 파견된 경무장 부대는 아군 파일럿 거의 전원을 성공적으로 구출했을 뿐만 아니라, 수십 명의 지온 파일럿까지 생포했다. 그 과정에서 양측 구조 부대는 여러 차례 교전을 벌였고, 연방군도 10여 대의 트럭과 승무원을 잃었지만, 지온군의 자쿠 세 대와 그와 비슷한 수의 마더 장갑차를 격파했다.​  이 결과에 제1사단 지휘관은 불같이 화를 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지온군은 현지 지리에 익숙하지 않았기에, 연방군보다 행동이 반 박자 느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제군들, 우리에게는 더 이상 환경에 익숙해질 시간이 없다!”​  “적의 증원군이 오고 있다. 우리는 즉시 공격을 개시해야 한다!”​  “하지만,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제공권을 장악할 때쯤이면, 연방군 탱크가 네놈들 코앞까지 와 있을 거다!”​  사단 지휘관 유리 켈라니 소장은 눈앞의 부하들을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오늘 밤부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반드시 바이코누르의 외곽 방어선을 점령한다!”​  “우선, 외곽의 296고지를 점령한다!”​  소위 296고지란 바이코누르 기지 외곽에 있는 한 언덕을 말한다. 이곳은 바이코누르 기지 부근의 유일한 고지대로, 기지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정도는 아니었지만 기지 내부의 여러 시설을 볼 수 있었다.​  296이란 이 고지의 해발고도를 의미하며, 원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는 대부분의 현지인이 사라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날 밤, 296고지 위, 단 한 개 중대뿐인 연방 수비군은 대부분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소수의 보초만이 경계하며 초소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들은 위장 망토를 두르고 영구 진지 안에 숨어 있었으며, 앞에는 각종 감시 장비의 계기판이 있었다. 이 장비들을 이용해 반경 5킬로미터 내의 모든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었고, 토끼 한 마리가 지나가도 열화상 카메라에 똑똑히 잡힐 정도였다.​  만약 적이 야음을 틈타 접근하려 한다면, 전화 한 통이면 기지 내에 대기 중인 포병 부대가 5분 안에 적의 머리 위로 포탄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기습 또한 어려웠다. 적들은 먼저 감지기, 지뢰 지대 등 외곽에 설치된 각종 장애물을 처리해야 했다. 비록 지온군이 하루 종일 외곽 지뢰 지대를 포격했지만, 밤이 되자 기지 수비군은 지뢰 살포 로켓으로 그 지역을 다시 지뢰밭으로 만들어 놓았다.​  “오늘 밤도 조용하겠지!”​  감시 장비 뒤에서, 완전 무장한 한 하사가 하품을 참지 못했다. 시간은 새벽 2시 30분. 경계 근무를 서 본 사람이라면 2시부터 4시까지의 근무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래서 지금, 하사는 정말이지 괴로웠다.​  “그렇겠지. 지온 놈들이 그렇게 무모하게 바로 공격해 오진 않겠지?”​  옆에 있던 동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감시 장비에 정체불명의 잡음이 끼기 시작했다.​  “미노프스키 입자 교란!”​  “경보 울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지온군이 미립자를 살포하여 연방군의 원거리 탐지 장비를 교란하기 시작했을 때, 레이더 부서는 이미 전투 경보를 발령했다.​  대기 중이던 파일럿들은 재빨리 대기실을 뛰쳐나와 격납고로 달려갔다.​  미립자가 나타난 후, 전쟁의 규칙은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레이더로 적을 탐지한 후 출격했지만, 이제는 적을 탐지할 수 없을 때 출격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노프스키 입자의 특성이 그러했기에, 만약 한 지역에 아무 이유 없이 미립자가 나타난다면 그곳에는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것이었다!​  연방군이 경보를 울리자마자, 지평선 너머에서 맹렬한 포격이 날아들었다.​  지온군도 미립자 살포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대놓고 움직이는 것보다는 행적을 감추는 편이 나았다.​  제1사단 전체가 모든 화포와 마젤라 어택을 총동원했고, 심지어 상당수의 자쿠까지 동원되어 개조된 로켓포로 하늘을 향해 탄약을 쏘아 올렸다.​  기지 동쪽, 연방군 제90기갑사단이 책임지는 방어선 구역은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지온군의 공격은 외곽의 지뢰밭뿐만 아니라, 탄약고, 병영 등 기지 내부의 각종 시설을 향했다.​  이것들은 모두 낮의 공중전 때 지온군 공중 부대가 틈틈이 촬영해 둔 것들이었다.​  하지만 포격 효과는 미미했다. 바이코누르 기지는 연방군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곳으로, 중요 시설은 대부분 지하에 있었다. 지표면이 뒤집혀도 별다른 손실은 없었다. 포격 중, 외부에 노출된 몇몇 짐의 모니터가 파편에 손상된 것을 제외하면, 연방군의 손실은 미미했고, 사상자도 두 자릿수를 넘지 않았다.​  포격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량의 돕 전투기들이 기지 상공에 도착하여 방어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지의 방공 화력이 즉시 반격에 나섰다. 방공포와 지대공 미사일이 굉음을 내며 하늘을 온통 대낮처럼 밝혔다.​  그와 동시에, 296고지의 연방군 관측소도 지평선에서 빠르게 접근하는 지온군을 발견했다.​  공격을 맡은 지온 제3여단은 단숨에 백여 대가 넘는 기동전사와 백여 대의 전차, 그리고 수백 대의 장갑차를 투입했다. 이는 여단 전체 전투 장비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로, 제1여단의 전멸이 지온군에게 상당한 심리적 충격을 주었음이 분명했다.​  “좌표 확인, 효력사!”​  고지 위의 연방군은 수가 많지 않았다. 이 고지 자체가 많은 부대를 전개할 수 없어 한 개 중대도 비좁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리적 이점 덕분에, 그들은 기지 전체의 방어 포화를 마음대로 동원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온군이 공격을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지상에서 반격에 나선 것은 바로 포병들이었다!​  “젠장, 자쿠가 너무 빨라!”​  공격을 유도하던 연방군 화력 관제병은 이미 후방 부대를 멀찌감치 따돌린 기동전사를 보며 분해서 가슴을 칠 수밖에 없었다. 포병의 화력은 모두 지온군의 전차와 장갑차 머리 위로 쏟아졌지만, 저 거대한 사이클롭스들은 거의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그들은 장갑차를 추격할 때처럼 전력으로 추진기를 분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빠른 걸음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한 걸음에 수십 미터를 내디뎠고, 불과 몇 분 만에 자쿠들은 이미 지뢰 지대에 접근하여 기지 수비군의 시야에 들어왔다.​  “발사!”​  엄폐호 아래 숨어 있던 전차, 기동전사, 그리고 미사일 등 다른 화력들이 일제히 포효하기 시작했다. 빗발치는 탄막에 가장 앞에 서 있던 십여 대의 자쿠가 먼저 소리 없이 쓰러져 나갔다.​  지온군 역시 노출된 화력점을 향해 반격했다.​  M61A5 전차 한 대가 수천 미터 밖의 적을 향해 화력 통제 제원을 조정한 후, 즉시 전력으로 포를 쏘기 시작했다. 155mm 철갑탄이 굉음을 내며 기체를 향해 날아가, 방심하고 있던 자쿠 한 대의 복부를 관통하며 성공적으로 격파했다.​  피격당한 자쿠가 통제 불능으로 쓰러지는 동안, 61식 전차의 위치도 자쿠의 화력 통제 장치에 발견되어 표시되었다.​  곧이어, 그의 뒤에 있던 자쿠 한 대가 어깨에 멘 280mm 로켓포를 들고 한 발을 쏘았다.​  이 61식 전차는 성형작약탄에 그대로 관통당했고, 심지어 그 여파로 자동 장전 장치의 탄약까지 유폭되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포탑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280mm 로켓포뿐만 아니라, 저속 다목적 유탄을 발사하는 120mm 머신건 역시 61식 전차의 상부 장갑에 상당한 위협이 되었다. 포탄은 전차의 상부 장갑을 손쉽게 파괴할 수 있었다. 155mm 전차포로 교체한 61식은 겨우 반격할 힘을 갖췄을 뿐, 더 기민한 기동전사와 맞붙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이었다.​  엄폐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90기갑사단은 짧은 시간 안에 30여 대에 가까운 61식을 잃었다.​  90사단의 기동전사 부대 역시 손실을 입었다. 지온군 파일럿의 상당수는 루움 전투를 겪은 베테랑들이었다. 그들의 사격술은 정교했고, 2천 미터 거리에서도 상당한 명중률을 유지했다.​  비록 짐이 엄폐물 뒤에서 사격하여 조종석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기는 어려웠지만, 짐의 머리 감시 장치를 파괴하는 것만으로도 이 기체들의 전투 효율을 떨어뜨릴 수 있었다.​  결국, 상당수의 연방군 파일럿들은 겨우겨우 기동하며 싸울 수밖에 없었고, 그들이 지온군에게 가하는 화력 압박 효과는 즉시 약화되었다.​  그 후, 십여 대의 자쿠와 겨우 그들의 발걸음을 맞춘 장갑차들이 296고지를 향해 돌격을 감행했다.​  “헌터 소대, 준비!”​  고지에는 중장비를 배치할 수 없었기에, 수비군이 자쿠를 상대할 수 있는 무기는 여왕 유선 유도 미사일뿐이었다. 중대 전체가 산 정상에 분대 단위로 총 12개의 발사 장치를 배치하고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관총조!”​  중대 지휘관은 지온의 마더 장갑차가 산기슭에서 보병을 내리는 것을 보고 즉시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자 은밀한 산 정상 화력점에서 M299 경기관총이 포효하기 시작했고, 총알이 산기슭으로 쏟아지며 즉시 한 무리의 지온 병사들을 쓰러뜨렸다.​  이 지온 보병들은 기동전사 부대처럼 충분한 전투 경험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훈련소에서 석 달을 보낸 뒤 바로 전장으로 투입되었고, 혼란은 필연적이었다. 그들을 지휘해야 할 하사관들조차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공을 세우고 싶은 욕심에 찬 한 지온 하사관이 포효했다.​  “지온 만세!”​  그리고는 앞장서서 산 정상을 향해 돌격했다.​  그의 뒤에서 공격 대형을 갖춰야 할 보병들도 뻣뻣하게 허리를 세운 채 밀집 대형으로 그를 따라 돌진했다.​  결국, 이들은 예상대로 기관총에 의해 마치 보리밭처럼 줄줄이 쓰러졌다.​  “보병을 엄호하라!”​  기동전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든 기관총으로 산 정상을 향해 소사를 퍼부었다. 하지만 그들은 발밑에 지온 보병이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결국 십수 미터 높이에서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120mm 탄피가 운 없는 몇몇에게 명중했다.​  “산개해, 산개! 기동전사에게서 멀리 떨어져!”​  마침내 정신을 차린 지온군 장교는 땅에 엎드려 꼼짝도 못 하는 병사들을 하나하나 일으켜 세우고, 군화로 엉덩이를 걷어차며 자쿠에게서 멀리 떨어지게 했다.​  “전진, 전진! 모두 일어나! 산개 대형으로 전진하라!”​  한편 고지 위에서는, 연방군 기관총 사수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신들의 엄폐호로 굴러 들어갔다. 그들은 적을 유인하는 역할이었고, 기관총 탄띠 하나를 비우자마자 즉시 철수했다. 자쿠의 포탄이 곧 그들이 있던 위치를 뒤덮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쿠가 이 화력점들을 처리하느라 바쁜 사이, ‘헌터 소대’라 불리는 대전차 화력점이 자쿠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1호, 2호, 발사!”​  12개의 발사 장치는 세 개 조로 나뉘어 있었다. 이 또한 마카리우스 교범에 나온 내용으로, 각 조의 두 발사 장치가 먼저 발사하면, 미사일의 초기 속도 문제 때문에 지온 파일럿들은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점프하여 회피하려 할 것이었다.​  그리고 남은 두 발사 장치는 바로 이런 순간에 마무리 공격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공중에 뜬 자쿠는 날아오는 유선 유도 미사일을 피하기가 더 어려웠다.​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 은폐해 있던 두 발사 장치에서 포수가 조준경으로 아래쪽의 자쿠를 단단히 조준한 뒤 버튼을 눌렀다.​  ‘푸슉’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미사일 한 발이 발사관에서 튀어나왔다.​  미사일은 한번 아래로 떨어졌다가 재빨리 날아갔다. 안전거리를 벗어나자 꼬리날개가 펼쳐지고 엔진이 점화되었다. 탄체 뒤에는 광섬유 유도선이 달려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미립자를 가장 효과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무기였다. 미사일을 조종하는 신호가 광섬유를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미립자의 방해를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미사일 접근, 피해!”​  여왕 미사일이 날아가는 소리는 작지 않았고, 지온 파일럿은 눈으로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발견할 수 있었다. 곧이어 가장 앞에 있던 자쿠 한 대가 무의식적으로 추진기를 점화하며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3호, 4호 발사!”​  대기 중이던 대전차 조가 기다리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곧이어 두 발의 미사일이 다시 발사되었고, 1, 2조의 조원들은 상대가 뛰어오르는 순간 즉시 유도선을 끊고 발사 장치를 옮기기 시작했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자쿠는 미사일이 굉음을 내며 자신에게 부딪히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폭발이 자쿠를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뜨렸다.​  묵직한 작약은 기체를 산산조각 냈고, 팔다리 파편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저놈들 위치를 봤다!”​  후방에 있던 자쿠 한 대가 총구를 돌려 발사조가 있던 위치를 향해 소사하려는 순간, 진지에서 다시 두 발의 미사일이 솟구쳐 올랐다. 파일럿은 마구잡이로 방아쇠를 당기며 기체를 조종해 옆으로 점프 이동했지만, 막 착지하려는 순간 세 번째와 네 번째 미사일이 다시 나타났다.​  이번에는 운이 좋아서 자쿠는 다리 한쪽만 날아갔다. 그래서 그의 기체는 뒹굴며 굴러떨어졌고, 다른 아군 기체와 부딪히기까지 했다.​  “보병 놈들은 뭐 하는 거야, 빨리 올라와!”​  두 대의 기체가 격파되자 자쿠 파일럿들은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각도 문제로 그들의 화력으로는 엄폐물 속의 연방군 화력점을 직접 맞추기 어려웠고, 그저 기관총으로 마구잡이로 압박하며 보병이 제때 올라와 주기를 바랄 뿐이었다.​  지온 보병들도 지휘관의 채찍질에 못 이겨 조금씩 산 정상을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이제야 그들은 훈련소의 가르침을 겨우 떠올렸다. 연막으로 엄호하고, 조별로 교대로 전진했다. 비록 능숙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HQ, 여기는 관측 지점. 위험 근접 타격 요청. 좌표 일대 고각 공중 폭발 공격으로 도배 바람!”​  산 정상의 연방군 지휘관은 다시 한번 호루라기를 불어 부하들을 모두 영구 진지 안으로 대피시켰다. 그는 진지에 근접한 적들을 향해 포병의 공중 폭발 공격을 요청했다.​  이윽고 지온군 보병이 고지에 거의 다다랐을 때, 굉음과 함께 터지는 천둥소리가 그들의 머리 위에서 울려 퍼졌다.​  공중 폭발탄에는 대량의 쇠구슬이 들어 있었고, 수많은 파편과 함께 순식간에 산 정상에 핏빛 안개를 피워 올렸다. 이는 포격에 의해 지온군 병사들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며 생긴 것이었다.​  머리 위에서 터지는 포탄은 피할 곳이 없었다. 촘촘한 쇠구슬과 파편이 폭심지 아래를 향해 광포하게 고르게 퍼져나갔다. 급작스럽고 빽빽한 포격이 끝난 후, 고지 위에 드문드문 있던 식생은 더 이상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땅은 분홍빛이 섞인 노란 흙으로 뒤덮였다.​  방금 이곳에 있던 수십 명의 지온군 병사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따금 피에 젖은 천 조각이 땅에서 날아오를 뿐이었다.​  고지를 공중 폭발 공격으로 초토화한 후, 연방군 포병은 재빨리 화력을 산기슭 아래로 옮겼다.​  지온군은 사방으로 흩어져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후방 항공 기지에서 출격한 공군 부대가 공역 상공에 도착하여 도프 전투기와 교전을 시작했다.​  더 후방에 있던 플라이 만타 폭격기는 더욱 인정사정없이 지온군을 향해 항공 폭탄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부대 후퇴를 명령하라!”​  (이번 화 끝)​***​### 제110장 바이코누르 혈전 (중)제110장 바이코누르 혈전 (중)​지온군 포병대는 아군 부대의 퇴각을 엄호하기 위해 다시금 연방군 진지를 향해 막대한 양의 탄약을 쏟아붓기 시작했다.​선두에서 공격하던 자쿠들 또한 계속해서 연막을 살포했다. 그리하여, 안 그래도 밤이라 시야가 좋지 않았던 전장은 온통 새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들리는 것이라곤 포화의 굉음과 그 사이사이에 섞여 들려오는 육중한 발걸음 소리뿐이었다.​“집에 가서 젖이나 빨아라, 이 지온 놈들아!”​포화가 멎고 연기가 흩어지자, 전장에는 연방군의 거친 욕설과 조롱만이 울려 퍼졌다.​“신속히 전장을 정리하고, 손실을 파악한 후, 방어선을 재정비하라!”​지온군이 정말로 퇴각한 것을 확인한 연방군은 다시 방어 태세를 재정비하기 시작했다.​파괴된 61식 전차는 정비용 견인차에 이끌려 지하 벙커로 옮겨졌다. 수리할 수 있는 것들은 전사한 병사들의 시신을 치운 뒤 다시 수리되었고, 수리가 불가능한 것들은 한쪽에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손상된 짐 또한 평판 트레일러에 실려 후방으로 수리를 위해 보내졌다. 상태가 심각하지 않은 경우, 정비반이 현장에서 직접 공구를 들고 긴급 수리를 진행하기도 했다.​그와 동시에, 지뢰 살포 로켓 차량도 포효를 시작하며 전장 외곽에 엄청난 양의 지뢰를 흩뿌렸다.​동시에 야전 취사장에서는 모든 인원을 위한 음식과 따뜻한 국을 준비해 전방으로 보냈다. 반나절 넘게 고된 싸움을 벌인 연방군 병사들은 손에 묻은 흙먼지와 핏자국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판 가득 밥을 퍼 담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바로 그때, 지온군은 연방 수비군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듯, 그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보내왔다. 굉음을 내는 포탄이 다시 먼 곳에서 날아와 방어선 위로 떨어졌다.​진지 안에 숨어 있던 연방군 병사들은 이런 소란에 이미 익숙해져,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밥을 입에 밀어 넣었다. 진동 때문에 흙먼지가 식판에 떨어져도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기껏해야 윗부분을 걷어내고 계속 입안으로 쑤셔 넣을 뿐이었다.​전쟁은 무정한 촉매제였다. 아마 지온군이 강하를 시작한 첫날에는 이 병사들도 공포에 떨었겠지만, 이제 그들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이 개자식들, 밥도 편히 못 먹게 하네!”​기지 2선 지하 벙커에서 붉은용대 파일럿들 역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지온군이 공격해 왔을 때, 그들은 전투에 투입되지는 않았지만 예비대로서 2선에서 계속 대기하고 있었고, 전투가 끝난 후에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식사조차 정비용 가교 옆에서 간이 공구 상자를 책상 삼아 해결하고 있었다.​그리고 지금, 마카리우스는 쿵쿵 울리는 포성에 잔뜩 심기가 불편해져 있었다.​“고프 영감이 미데아만 내줬어도, 지금 당장 지온 포병 진지 위로 날아갔을 텐데…….”​“그러다 중간에 대공포랑 전투기한테 격추당하겠지!”​“휴, 도다이는 대체 언제쯤 보급되는 거야. 정 안 되면 광륜이라도 주든가!”​“아예 모빌슈트가 비행기로 변신하게 해달라고 하지 그래!”​옆에 있던 나가세 케이와 다른 사람들이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왜, 못 믿겠어?”​마카리우스가 밥숟가락을 치켜들며 밥과 반찬을 우물거리면서 말했다.​“그럼 내기할까? 5년 안에 모빌슈트가 비행기로 변신할 수 있는지 없는지!”​“안 해!”​그 말을 들은 모두는 즉시 의자를 움직여 마카리우스에게서 조금 떨어지려 했다.​하지만 밥을 다 먹기도 전에 전투 경보가 다시 장교동 하수구 한번 울렸고, 이번에는 붉은용대에 직접 출격 명령이 떨어졌다.​“무슨 상황이지?”​“기지 남쪽 테스트 구역에 지온 모빌슈트 출현! 현재 수비군과 교전 중입니다!”​“규모는?”​“모빌슈트 1개 대대로 추정되며, 소수의 특수부대도 있습니다. 클리니, 자네가 1개 중대를 이끌고 가게. 장갑 대대 하나를 붙여줄 테니, 반드시 막아내게!”​안토노프 사령관이 아주 엄숙하게 말했다.​“알겠습니다. 1, 2중대는 남겨두겠습니다!”​기지 남쪽을 수비하는 부대는 더 이상 제90기갑사단이 아닌 제155기갑사단이었다. 이 부대의 기반 전력은 90기갑사단에 비해 다소 약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개전 전, 제155기갑사단은 기갑사단이 아니라 축소 편성된 보병 여단이었고, 전쟁이 발발한 후에야 기갑사단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155mm 포를 장착한 M61A5 전차의 수요가 워낙 커서, 해당 기갑사단은 신형 전차를 절반밖에 교체하지 못했고, 나머지 부대는 여전히 구형 M61A2를 사용하고 있었다.​하지만 이 사단의 연방군 병사들에게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를 발휘하여 퀸 미사일을 2연장 발사 시스템으로 개조한 뒤, 74식 호버 장갑차에 장착하여 부족한 대전차 화력을 보강했다.​정면 부대가 다시 공격을 개시하자, 제3여단 소속의 이 지온군 모빌슈트 부대는 미노프스키 입자의 교란을 틈타 이곳의 수비군에게 기습을 감행했다.​구프 2개 중대와 자쿠 II F형 2개 중대가 동틀 무렵 미노프스키 입자로 인한 교란 구역을 박차고 나와, 5분도 채 안 되는 시간 만에 연방군의 외곽 진지를 돌파했다.​“역시 연방군의 정예는 소수에 불과하군!”​작전을 지휘하던 지온 지휘관은 핑거 발칸을 한바탕 난사하여 발포 중이던 기관총 진지를 하늘로 날려버린 후, 통신으로 감탄하듯 말했다.​이곳을 지키던 연방군 병사들 또한 매우 용감했다. 전차가 파괴되고 대전차 미사일이 폭발한 후에도, 여전히 참호와 배관 속에 몸을 숨긴 채 로켓 발사기와 유탄 발사기 같은 무기로 끈질기게 저항했다.​하지만 이 미약한 화력으로는 지온군의 진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돌파를 마친 지온군은 돌파구를 넓히며 남은 연방군 보병들을 소탕하기 시작했다.​구프 한 대가 거대한 발로 발밑의 참호를 미친 듯이 짓밟고 있었다. 조금 전, 용감한 연방군 보병이 쏜 대전차 로켓탄 한 발이 그 기체의 가슴팍에 명중했다.​그 병사는 기지 외곽의 한 참호에 숨어 있다가, 방심한 구프가 다가오자 몸을 드러냈던 것이다.​안타깝게도, 만약 그가 구프의 모노아이를 노렸다면 상대에게 유효한 피해를 줄 수도 있었겠지만, 흉부 장갑은 구프의 가장 단단한 부위였다. 로켓탄은 폭발 후 얕은 탄흔만 남겼을 뿐이었다.​그 후, 이 구프의 파일럿은 마치 모욕이라도 당한 듯 길길이 날뛰며 상대가 있던 참호를 짓밟았다.​이어서 그는 기체를 조종해 계속해서 발로 지면의 흙을 긁어모아 참호 안으로 걷어찼다. 참호 전체가 단단하게 다져지고 나서야 그는 만족스럽게 멈춰 섰다.​“그냥 곱게 보내줄 수도 있었잖아!”​옆에 있던 동료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다음엔 주의하지, 뭐!”​구프 파일럿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그때, 귀를 찢는 듯한 몇 차례의 굉음이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더니, 고속으로 날아온 철갑탄이 연방군 병사를 잔혹하게 살해한 구프를 꿰뚫었다.​“잘했다, 제군!”​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쓰러져 미동도 없는 구프를 보며, 방금 부하들을 지휘해 일제 사격을 마친 전차 지휘관이 환호성을 질렀다.​그들의 전차는 업그레이드되지 않은 M61A2였고, 심지어 예비 창고에서 막 꺼내 온 신차였다. 하지만 화력 문제 때문에, 이 전차병들은 당연히 대 모빌슈트 전술의 효과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하지만 이제, 사실이 그들에게 증명해 주었다. 한곳에 공격을 집중하기만 하면 150mm 포로도 지온 모빌슈트에게 유효한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이로 인해 증원 온 전차 중대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다음 목표, 각 조…….”​지휘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굉음을 내는 120mm 포탄이 그들을 향해 날아들었다.​“대장님, 4호 차가 당했습니다!”​“요셉도 죽었습니다!”​“당황하지 마라, 후진! 대열을 재정비하고 공격하라! 움직여! 계속 움직이면 쉽게 당하지 않아!”​이윽고, 신속하게 대열을 재정비한 61식 전차 중대는 다시 한번 포효했다. 이번에 명중한 것은 로켓탄으로 반격하려던 자쿠 한 대였다. 그 기체는 하복부가 그대로 관통당했고, 심지어 다리 한쪽이 날아가 버렸다.​“쫓아가! 저놈들 놓치지 마!”​연달아 기체 두 대를 잃은 것을 본 지온 지휘관은 격노했다. 그의 수하들은 여단 전체에서 가장 정예인 부대였다.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빗발치듯 쏟아지는 120mm 포탄은 처음부터 멈추지 않고 연방군 전차 부대 주위에서 계속해서 터져 나갔다. 61식 한 대가 재수 없게 궤도에 포탄을 맞았고, 그 차체는 통제 불능 상태가 되어 한쪽으로 미끄러져 갔다.​“젠장, 우릴 얕보지 마라!”​후퇴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전차장이 가장 가까이 있는 지온 모빌슈트를 향해 포신을 치켜들었다. 이어서 두 포문이 동시에 불을 뿜었다. 하지만 그가 조준한 지온 파일럿도 초보가 아니었다. 포탄이 발사되는 순간, 그는 조종간을 당겨 기체를 옆으로 도약시켰고, 두 발의 포탄은 그의 측면을 스치듯 날아갔다.​이윽고 파일럿은 걸음을 멈추고 머신건을 들어 전차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정확한 점사가 모두 61식의 장갑에 명중했다. 순식간에 포탑의 장비가 파괴되었고, 두 개의 포신은 엿가락처럼 휘어져 전차는 발포 능력을 상실했다.​그리고 상대의 분노에 찬 기관총 사격을 받으며, 이 구프는 히트 호크를 뽑아 들고 전차의 후방을 향해 내리찍었다.​“또 한 대 당했다!”​“계속 후진해, 멈추지 마! 계속 쏴라, 형제들! 오늘 죽더라도, 놈들을 붙잡아 둬야 한다!”​이 전차 중대는 방어선의 구멍을 메우러 온 부대였다. 그들 뒤에는 모빌슈트 부대가 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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